나르시시스트는 관계에서 상대의 취약성, 공감 능력, 헌신, 책임감, 그리고 용서까지 통제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특성들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대부분의 관계에서 덕목으로 여겨지는 것들이죠.
지난 글에서 나르시시스트가 상대의 책임감을 역이용하는 패턴을 알아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용서를 역이용하는 패턴에 대해 알아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용서해 주는 사람에게 용서를 거듭 요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용서를 ‘반복해도 되는 일’의 근거로 삼습니다.
이 글이 ‘한 번만 더’라는 생각 앞에서 판단이 흔들리는 분들께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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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Q. 나르시시스트 배우자를 용서했다면, 다시 합쳐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용서는 지난 일에 대한 내 마음의 정리이고, 재결합은 앞으로 어떤 관계 속에서 살지에 대한 별개의 결정입니다. 용서했다는 이유로 재결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Q. 진짜 변화인지, 용서를 노린 사과인지 어떻게 가려내나요?
A. 사과의 구체성, 책임의 위치, 내가 거절했을 때의 태도, 약속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기간 네 가지를 보세요. 말보다 시간이 지난 뒤의 행동이 더 정확한 단서입니다.
Q. 용서하면 법적으로 불리해지나요?
A. 사유에 따라(배우자의 부정행위) 그럴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용서의 뜻을 밝히거나 재결합하기 전에 법적 영향을 먼저 확인해보셔도 좋습니다.
1. 용서했다면, 다시 합쳐야 하는 걸까요?
“이번에는 진짜 다르대요.” “상담도 받아 보겠다고 해요.”
이혼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상대 배우자와 쌓아온 시간들이 겹쳐 몇 번이고 기회를 주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용서와 재결합은 별개로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용서는 지난 일에 대한 내 마음의 정리이고, 재결합은 앞으로 어떤 관계 속에서 살지에 대한 별개의 결정이니까요. 용서했다고 해서 다시 합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은 서로의 조건이 아닙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그 관계에 진심이었다는 증거일 뿐, 결정을 되돌려야 할 이유가 아닙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만 해도 명확해지는 부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나르시시스트 배우자는 이 둘을 한 묶음으로 만듭니다. “용서했다면서 왜 안 돌아와?” “용서한 거면 그 얘기는 그만해.” 이런 말이 반복되면 용서는 내가 건네는 마음이 아니라 (기존에 했던 용서에 대해 내가 져야 하는 책임이자) 갚아야 하는 빚이 되고, 용서하지 않으면 되려 매정한 사람이 됩니다.
용서와 재결합은 별개입니다. 용서는 내가 건네는 것이지, 상대가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한 뒤에 무엇을 할지는 여전히 내가 정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의 용서가 거듭될수록 용서를 ‘예상되는 결과’로 계산에 넣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잘못이 용서되면, 그다음에는 같은 잘못 앞에서 “지난번에도 괜찮았잖아”라는 전제가 생깁니다. 사과에 들이는 수고는 점점 줄어 형식만 남고, 결국 용서는 반복해도 잃을 것이 없는 일종의 보험처럼 쓰입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는 용서받은 일을 두고 “그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라며 책임의 방향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다면, 변화의 약속이 언제 나왔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와 약속이 다음과 같은 시점에 반복해서 나오지는 않았나요?
내가 별거, 상담, 소송 준비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시작한 직후
가족이나 지인이 개입해 나를 지지하기 시작한 직후
내가 처음으로 “이제 끝내겠다”고 단호하게 말한 직후
이런 시점에만 변화가 약속되었다면, 그 동기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내가 떠나는 것을 막는 데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용서는 마음의 일이지만, 사유에 따라 이혼 청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요. 부정행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민법 제841조는 배우자의 부정행위(제840조 제1호)에 대해 다른 일방이 사전 동의나 사후 용서를 한 때, 또는 이를 안 날부터 6개월, 그 사유가 있은 날부터 2년이 지나면 그 사유로는 이혼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거든요.
다만 이 조항은 부정행위 사유에 관한 것이고, 폭언이나 경제적 통제 같은 다른 사유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말과 행동이 ‘용서’로 평가되는지는 의사표시의 내용과 이후 경위를 종합해 판단하므로 사안별로 달라집니다. 만약 내가 그동안 많이 참고 용서해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이혼할 수 없는 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니 포기하지 마시고, 상담으로 먼저 짚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