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계약의 모든 것 ③ | 계약서 없이 진행된 협업, 중도 파기 시 법적 책임은?
크리에이터 계약은 아이디어 구상, 시안 제작, 견적 협의 등 ‘교섭 단계’가 길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서면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업이 중단되면, 누구의 책임인지 불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계약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이 협업을 파기했을 때의 법적 책임을 살펴봅니다.
1. 계약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란 무엇인가
크리에이터 계약은 통상 제안서·기획안 교환, 시안 제작, 예산 협의 등을 거칩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청약(offer)’과 ‘승낙(acceptance)’이 합치되지 않아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민법 제527조 이하에 따르면, 계약은 상대방의 승낙 의사표시가 도달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즉,
견적서 전달
“좋아요, 진행해보죠”와 같은 구두 표현
일부 시안 제작 후 중단
이와 같은 상황은 계약이 법적으로 성립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계약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대신 불법행위 책임 여부가 문제됩니다.
2. 계약 교섭 단계의 부당한 중도 파기
대법원은 “계약 교섭 중이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성실히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즉, 계약 자유 원칙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정당한 신뢰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한 경우, 합리적 이유 없이 협상을 파기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01. 6. 15. 선고 99다40418 판결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히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위법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 측이 구체적인 콘텐츠 방향을 제시하며 “곧 계약하자”고 한 뒤 일방적으로 철회한 경우
크리에이터가 요청에 따라 시안을 제작했는데, 계약서 체결 직전 발주자가 다른 업체로 변경한 경우
이런 경우, 계약은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교섭 단계의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3. 손해배상 범위: 신뢰이익의 배상
계약이 아직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상대방이 부담하는 책임은 ‘신뢰이익(reliance interest)’, 즉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 믿고 지출한 비용”에 한정됩니다.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계약교섭의 부당한 중도 파기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계약체결을 신뢰한 상대방이 입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이다.”
예를 들어,
시안 제작 비용
회의·자료 준비비
외주 협력 인건비 등
이와 같은 계약 준비비용은 배상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계약이 체결된 뒤 발생할 이익(예: 제작비 전액)은 보상 대상이 아닙니다.
4. 교섭 파기 책임이 인정된 사례
서울동부지방법원 2021. 4. 23. 선고 2018가단137888 판결
피고의 요청에 따라 원고가 6개월 이상 설계도면을 작성했는데,
피고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한 경우,
원고의 설계비용은 “계약 성립을 신뢰하고 지출한 비용”으로 보아 배상 책임 인정.
이처럼 실질적으로 상대방이 요청한 행위(시안 제작, 제안서 제출 등)가 있었다면 그 비용은 정당한 신뢰에 따른 지출로 평가되어 손해배상 청구 가능합니다.
5. 실무상 예방 방법
(1) 교섭 단계에서의 문서화
협상 초기부터 이메일, 메신저, 회의록 등을 정리·보관해야 합니다.
‘누가 먼저 요청했는가’는 불법행위 성립 여부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2) 제안서·시안 제출 전 NDA 체결
기획안·시안이 제3자에게 유출될 위험을 막기 위해 비밀유지약정(NDA) 을 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시안은 무상 제공이 아닌 별도 비용 대상’이라는 단서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3) “계약 미체결 시 책임 없음” 문구 활용
계약 교섭 단계에서 “최종 서면 계약 체결 전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문구를 명시하면,
교섭 파기에 따른 책임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계약서 없이 진행된 협업이라도, 상대방이 정당한 신뢰를 형성시켰다면 계약자유의 원칙보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우선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도 일방적 파기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슈가스퀘어는 크리에이터 계약 교섭, 계약 불성립 및 중도 파기 관련 손해배상 소송 등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발생하는 실무 분쟁에 대해 다수의 자문 및 소송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