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분리조치, 회사 마음대로 못한다… 법원이 밝힌 전보 기준
직장 내 괴롭힘이 신고되면 회사는 보통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신고인을 분리하기 위한 조치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보나 대기발령, 부서 이동 같은 인사 조치가 뒤따르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에서 ‘부당전보’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서울행정법원 2025. 9. 19. 선고 2024구합80217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성남권역에서 전남 나주로 근무지를 변경한 전보 조치에 대해 부당전보를 인정한 사례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판결의 사실관계와 법원의 판단 기준을 정리합니다.
1. 사건 개요
이 사건의 당사자는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와 그 소속 직원 A씨입니다. 회사는 성남시에 본사를 두고 수도권·충청권·경상권·호남권 등 전국에 지사와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A씨는 2006년 입사해 여러 부서를 거쳐 2023년 9월부터 파주지사 C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파주지사 C부 직원 5명이 회사 감사실에 A씨를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했습니다. 감사실은 인사부서에 A씨와 신고인들을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고, 회사는 2023년 12월 21일 A씨를 전남 나주시 소재 광주전남지사 C부로 전보하는 인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보 효력은 2024년 1월 1일부터였습니다.
A씨는 이 전보가 부당하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고, 경기지노위와 중앙노동위 모두 부당전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 회사 측 주장과 법원의 기본 법리
회사 측은 전보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있었고, 감사실이 공식적으로 분리조치를 요청했으므로 신고인 보호와 추가 갈등 방지 차원에서 A씨를 다른 사업장으로 전보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A씨가 전남 지역에 연고가 있고, 과거 광주전남지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먼저 전보에 관한 일반 법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전보·전직은 사용자의 인사권에 속하지만,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에게 전직·전보를 할 수 없고, 전보의 정당성은 다음 요소를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입장입니다.
전보의 업무상 필요가 있는지
전보로 인해 근로자가 입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전보 과정에서 근로자와의 협의 등 절차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은 위 세 가지를 순서대로 검토했습니다.
3. 업무상 필요성에 대한 판단
법원은 먼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있었던 점, 신고인 전원이 같은 부서 직원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일정한 분리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즉, 회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수긍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분리 방법과 범위였습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근거로, A씨를 전남 나주 광주전남지사로 전보할 정도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분리조치가 반드시 원격지 전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사 내부 규정과 단체협약을 보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기간 중에 사용 가능한 수단은 다양하고, 수도권 내 다른 지사·사업소로의 배치나 직무 조정 등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었습니다.
둘째, 회사가 스스로 마련해 운영해 온 순환보직 기준과 원격지 전보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A씨가 “원격지 전보의 우선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원격지 전보기준은 전보희망자, 승진자, 원격지 근무 미경험자를 순서대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는데, A씨는 전보를 희망하지 않았고, 순서상 우선 대상자로 볼 근거도 부족했습니다.
셋째, 수도권 내에도 여러 지사와 사업소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다른 권역인 호남권 광주전남지사로 보낸 경위에 대해 회사가 충분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 전보가 신고인 보호와 조사 공정성 확보라는 명분 아래 내부 비선호 인력을 원격지로 배치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법원은 “분리조치 자체의 필요성”과 “특정 원격지로의 전보 필요성”을 구분하면서, 후자의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보기에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4. 생활상 불이익에 대한 판단
법원은 이어서 A씨가 전보로 인해 입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검토했습니다.
A씨는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면서 파주지사까지 장거리 통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수도권 권역에서 통근이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보 이후 근무지는 전남 나주시로 변경되었습니다. 화성에서 나주까지는 약 280km에 이르는 거리로, 기존 거주지를 유지한 채 통상적인 출퇴근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나주 인근에 별도의 거주지를 마련해야 하고, 이에 따른 월세 등 추가 주거비, 수도권과 나주를 오가는 교통비와 부대비용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A씨와 가족의 건강 상태, 향후 결혼 준비 상황 등 개인적인 사정까지 고려했을 때, 원격지 근무는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회사 측은 공동숙소 제공, 전근여비 지원, 수도권과 나주를 오가는 통근버스 운행 등을 근거로 생활상 불이익이 완화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러한 지원이 경제적 비용의 일부를 보전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장기간 생활 기반을 수도권에 둔 근로자에게 원격지 근무가 가져오는 실질적인 불편과 생활상의 부담까지 해소하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결국 이 사건 전보로 인한 생활상 불이익이 근로자가 통상 감수해야 할 정도를 현저히 벗어난다고 판단했습니다.
5. 협의 절차의 흠결
마지막으로 법원은 전보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 삼았습니다.
A씨는 파주지사로 전보된 지 약 4개월 만에 다시 전남 나주 광주전남지사로 전보되었습니다. 인사규정상 1년 이내 전보 금지 원칙이 있음에도 예외 사유를 들어 단기간에 연속 전보가 이루어진 점, 그리고 사전에 A씨가 이러한 원격지 전보 대상자로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회사로서는 보다 충실한 협의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회사 측은 자기신고서 제출 기회를 부여하는 등 형식적인 절차는 진행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단순히 일괄적인 자기신고서 제출 안내만으로는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 절차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업무상 필요성과 생활상 불이익이 균형을 이루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보 대상자의 전보 희망 여부와 지역, 생활상 사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청취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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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인사조치라고 해서 전보 명령이 자동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사용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로 지목된 근로자를 분리할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격지 전보를 포함한 모든 조치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첫째, 전보의 업무상 필요성은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타 권역 원격지 전보까지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둘째, 근로자가 입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은 거리, 주거비·교통비 부담, 건강·가족사정, 생활 기반의 변화 등 여러 요소를 실질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회사가 스스로 정한 인사 기준과 단체협약 내용도 전보의 정당성 판단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내부 기준에 명백히 어긋나는 전보는 그 자체로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절차적 측면에서 근로자와의 협의는 형식적 안내를 넘어, 전보 필요성과 대안, 생활상 사정을 충분히 논의하는 실질적인 과정이어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회사의 인사 조치가 과도하거나, 전보로 인해 생활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 조치가 정당한지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피해자 보호와 조직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되, 업무상 필요성·불이익·절차라는 세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향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상황에서는 개별 사건을 전제로 한 법률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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